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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2일. 이날을 기억해

스스로에게 진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중요한 시기에 나를 되돌아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한 지금까지 살아왔던 솔직한 나의 모습과 지금의 현재 모습, 그리고 앞으로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나 스스로 속여 왔던 진실과 마주하는 자리이자 지금의 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불안감의 실체를 마주하는 그런 시간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치열하게 고민하여 의미없는 생각의 흐름이 아닌 현실의 변화를 이끄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지난 2개월간 나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의 의미를 찾고 지금의 본 모습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2022년 11월 21일이 지난 2022년 11월 22일, 아직 아무것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설익은 말을 내뱉은 뒤 하루가 지난 지금. 나의 심리는 묘한 느낌으로 가득차 있다. 거의 다왔다는 기대감과 아직 발표되지 않은 결과에 대한 초조함, 그리고 나의 설익은 말로 인해 혹시라고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는 장애물의 대한 불안감, 남겨진 이들에 대한 미안함, 그럼에도 반드시 이 단계에서 변화해야 한다는 의지와 그리고 11월이 지나면 무슨일이 있더라도 어떤식으로 든 간에 현재의 내가 변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 등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심리가 얽기고 섥혀 있다. 균열은 이미 일어난 상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있는 지금, 지금의 내 모습은 그 균열의 틈에서 무엇이 나오는지 알아가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균열이 언제부터 생기게 되었는지는 어쩌면 좀더 깊숙히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누구 한사람의 원인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첫 단추부터 생각해봐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내가 의도적으로 자초 했을지도 모른다. 내 의도를 읽었던 그가 생각한 지난날의 보상이자 기회이자 어쩌면 형벌일 수 있는 것이 현재 지금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진정한 의도가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해석은 그러했고 나는 그 해석이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의도를 순순히 따랐다. 수십번의 경험을 이미 해봤던 사람의 경험과 경륜을 너무나 감탄스럽게 이해 할 수밖에 없었고 그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나는 컴플렉스 덩어리다.

솔직하게 나를 평가하면 나는 스스로를 컴플렉스 덩어리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시절 6학년 반에서 1등하던 순간의 희열로 부터 점점 내리막을 달리게 된 10대 유년시절을 지나 재수를 함에도 성공적이지 못한 입시와 대학 생활 동안 변하지 않는 내향적인 성격 찐따 같은 행동 군생활의 아픔을 거친 20대를 초반에는 그 정점을 달렸다. 군대를 전역한 20대의 내 모습은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폐허의 모습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군대 시절동안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 그리고 부족한 자기 객관화와 도피성 성격, 밝지 못한 미래의 대한 두려움, 장애인 동생에 대한 피해의식, 끊임없이 나를 속이는 자기기만 등 나는 무척이나 비겁하고 덜 떨어진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주하기가 너무나 두려웠다. 그런 추한 모습이 밖으로 드러날까 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사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24년이라는 암울한 세월동안 무의식적으로 쌓여온 그림자 덩어리는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서 나를 구성하며 살아간다.

24년이라는 암울한 세월동안 무의식적으로 쌓여온 그림자 덩어리를 멈추게 한 것은 대학교 복학을 했을 당시의 순간이었다. 스스로의 현실에 비관하며 하루하루 의미 없는 대학 생활을 보낼것 같은 순간에 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복학생이 아니었고 편입생이었다. 학과 안에 남자동기들이 거의 없어서 만나게 되었지만 너무 밝은 성격으로 나도 그에게 호감을 사게 되었다. 그의 활발한 성격 덕에 그와 함께 나와 같은 남자 동기들을 찾아서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베짱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이전과는 다른 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나는 생전 처음으로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고 시 창작과 지리산 여행이라는 활동과 소설 창작이라는 무척이나 생경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활동으로 삶의 작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살아가는 것에 의미가 큰데에 있지 않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던것 같다. 그때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던 것 같은데 지금 이 순간 생각을 해보니 그 친구를 만난 것이 나에게는 엄청난 구원이었다. 그 만남이 내 인생을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게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너무나 소중한 인연이다.

그럼에도 찐따 같은 면은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자기 객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상태였다. 지난 세월동안 무의식적으로 쌓여온 컴플렉스는 대상화 되지 못한체 나의 일부로 작용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라는 관점을 1인칭으로 보기만 할 뿐 3인칭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쪽팔린줄 모른다는 거였다. 내가 생각하는 단점에 대해서 그대로 쭉열거 한다면 다음과 같다. 게으름, 무계획, 쉽게 질림, 과식, 운동부족, 조울증세, 급한성격, 욱하는 성격 및 태도, 자기관리 부족, 유머감각 부족, 재미없음, 표리부동, 솔직하지 못함, 비관적인 예상, 남의 일에 관심 없음, 여자에게 용기없음, 긴장이 풀리면 버릇이 없어지고 쉽게 선을 넘음, 불리하면 말을 돌림, 순진함, 체력저하로 오는 피로, 땀을 많이 흘림으로 주변에 불쾌감을 줌 등등 객관적으로 볼수가 없거나 보기 두려웠던 모습들이 “나”라는 시점에서 보이지 않고 그대로 튀어 나와가며 살아갔다. 나의 대한 문제를 대상화시키지 못하면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습을 정면으로 인식하고 문제로 인식해야 극복대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솔직히 위에 열거된 문제가 아직까지 극복이 되진 않았다. 내가 그걸 알게된 시점은 첫사랑의 실패 때문인 것 같다. 너무 성급하게 굴었고 서툴렀고 욕망에 충실했던 시도 였고 너무 크게 대였다. 내 부족한 부분을 직시하게 되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던… 젠장! 아직까지 생각나고 쪽팔린 기억 그 시기가 나른 좀더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만들었고 지금의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나의 가장 큰 문제점말이다. 나는 수 없이 용기를 내어 시도한 시도가 실패하게 되면 그대로 꼬꾸라져 버린다. 실패의 기억이 너무 크고 무서워서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되버릴 정도로 그냥 밑바닥에 처박혀서 기어나오지도 못한다. 스스로를 더욱 가두고 더욱 작아져 버린다. 실패는 실패일 뿐인데. 소년만화의 원피스의 루피처럼 다시 도전하지 않는다. 아니 도전을 시도조차 못하다. 실패가 오면 그 실패로 끝이 나는 줄 안다. 지금의 내 심리는 마치 그 시절과 같다. 불안에 전전긍긍하며 안되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다른 길을 생각해 보지 않는다. 너무 스스로를 몰아가고 있다. 실망할 뿐 끝난게 아닌데 말이다. 내가 끝난게 아닌데 말이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를 낮설게 바라보게 되었다. 나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뭐랄까 내가 하는 행동이 타인의 시선에서는 어떨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 고민에 따라 행동을 변화시켜 보려고 했던것 같다. 나라는 사람을 그대로 사랑해 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걸 극복하기 나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변화가 드라마틱하게 왔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나는 아직도 나의 컴플랙스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분명 내가 극복해야 하는 대상임은 분명한데 그걸 극복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방법을 알아도 쉽게 행동하지 못한다. 너무나 분명한 방법인데, 뭔가 뭔지 모르겠는데 뭔가가 계속 방해를 한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뭔가를 꾸준히 할 수 없다는 거다. 너무 쉽게 질려 버린다. 귀찮음, 게으름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 할 수 없는 무언가가 계속 나를 맴돈다. 근본적인 뭔가가 계속 나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왜 끝까지 하지 못하는 건지 마지막 장만 넘기면 되는데 왜 마지막 장까지 안가고 거기서 멈추는 건지 그리곤 또 새로운 것을 또 찾는, 그냥 거기서 이어 나가지 않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하나를 끝까지 파야하는데 필요한 것을 얻으면 거기서 멈춘다. 완결을 내야 하는데 완결이 안난다. 비싼 돈을 지불했는데 돈값을 회수하지 못한다. 욕심만 가득하고 그 욕망을 얻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행동하지 않는다. 그게 일에서만 그렇다면 모르겠는데. 죽고 못사는 게임을 하면서도 마무리를 짓지 못한다. 암튼 그런 상태다. 여전히 컴플랙스는 나를 구성하며 살아가고 있고 그 구성채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이전과 다른게 있다면 이제는 그 상태를 극복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다. 무언가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서 명맥이라도 살려두고자, 개발블로그를 만들어서 올린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열정보다 습관이라는 것을 꾸준히 상기한다. 습관을 만들어서 그냥 기계적으로 라도 행동해 나가야 한다. 어떻게든 꾸준히 포스팅하고 기록한다. 기록의 성과를 되돌아본다. 만족하고 다시 기록한다. 100%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기위해 나름 대로 방법을 찾아 본다. 그렇게 아직도 미약하고 처절하게 변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렇게 컴플랙스를 대상화 시키다 보니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대로 삶을 이끌려 가며 살아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위기의식이 객관화 되어 내 앞에 다가왔다. 그러나 그 위기의식을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 살아가고 있었다. 마침 대학교 3학년을 지나 이제 대학교 4학년 될 아마 그 무렵이었다. 그 당시 나는 또 막연하게 공무원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던 차였고 그냥 저냥 졸업을 하면 노량진으로 가겠구나 싶었다. 내가 제일 못하는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게다가 당시 그 어떤 시험보다 경쟁률이 빡샌 공무원 시험이었다. 자신감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나는 시험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지난 26년의 인생이 증명을 해 줬으니까 말이다. 단순히 아버지 어머니가 공무원이라는 이유 따위로 내가 공무원이 될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개미 지옥으로 끌려 들어가는 심정이었다. 그 우울하고 습습한 노량진의 어디 구석 속에 3~4년 밖혀 있을 생각을 하니 정말 끔찍했다.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어찌저찌 시간은 흘렀고 나는 4학년이 되었다. 모두가 음울한 미래를 생각하며 강의실로 들어오던 차에 어떤 사짜 느낌의 강사가 프로그램 교육을 시켜 주겠다고 강의실을 찾아 왔다. 그냥 강의를 들으면 학점을 준다는 것이었다. 국어국문학과의 강의실의 학생들은 심드렁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만 빼고 말이다.

솔직해지면 나는 그 노량진이라는 장소가 너무 싫었다. 나에게 시험이라는 것이 결코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거기로 굴러가는 것 만큼은 반드시 막고 싶었다. 그냥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그 사짜 강사가 소개를 해주는 교육과정이 너무나 흥미롭게 들려 왔다. 빅데이터 전문가 양성? 나는 정말 순진했다. 6개월의 교육만 받으면 나는 빅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데이터 전문가가 된다는 자기객관화가 덜된 판단을 했다. 그 교육을 받는 것이 지금의 현재를 타개할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원래 내가 하고자 했던 선택의 길로 되돌아 가는 것이었다.

나는 원래 중학교때 인터넷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자 했다. 중학교 때 단순히 게임에 관심이 많았고 컴퓨터라는 세상이 너무나 좋았다. 주변에 나를 억까하는 세상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임의 세상이 너무 좋았다. 게임과 컴퓨터 그건 전혀 다른 세상이지만 그래도 컴퓨터로 뭔가를 한다는 것과 그걸 위해 학교를 다닌다는것 당시 그 때 판단에 그 인터넷 특성화 고등학교의 시스템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걸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부모님 귀에는 내가 마치 상고, 공고를 가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들리셨던것 같다. 아주 죽어라 반대하셨다. 부모님 서로가 아주 한 고집을 하시던 분이셨다. 사춘기의 반향 정도로 판단력이 흐려진 내 선택이라고 생각 했던지 아니면 나에 대한 가능성을 너무 높게 평가 하셨던지 부모님의 무조건 반대에 나는 그냥 그 선택을 접고 그 후 일반계 고등학교를 진학하여 지난 26년동안 인문계의 길을 걸어왔다. 부모님이 보시기에 그 길을 계속 걸어 왔던 내가 최종 목적까지 갔다면 아마도 공무원 준비를 마치고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이 선택의 순간이 참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다. 정말 운명이라는게 있다면 이건 정말 운명이었다. 결국 나는 이 길로 돌아왔고 이번에는 부모님의 의지를 꺾을 생각이었다. 부모님을 설득하지 않았다. 그냥 하겠다고 했다. 교육직 공무원이셧던 아버지는 이거 대학교에서 하는 그냥 학원 장사일 뿐이라고 비난하셨다. 이 시간에 차라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근데 나는 그냥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이미 나에게 많은 실망을 했던 부모입장에서는 그래 네 맘대로 하라는 “포기” 의 모습이 보였다. “네 하고 싶은데로해라.” 그 말을 듣기까지 26년의 시간이 들었다니… 지난 26살 까지 나에게 영향을 주신거 감사하지만 그 결과가 너무 시궁창이니 이제부턴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게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보니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게 보이기 시작했다. 뭐랄까 머리가 번쩍이고 눈이 살아난다는 느낌. 누군가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한 선택에 따라 이 길을 간다는 의지가 불타는 느낌, 그때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과정에 빅데이터를 공부했는가? 아니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 월 수 금 특정일자 오후까지 교육을 듣는 것이었고 주말 토요일 일요일 학교가 있는 지역까지 가서 그 기간동안 모든 시간을 JAVA, JSP, SQL, JS 등을 공부 했다. 심지어 주중에 교육하는 강사와 주말에 공부하는 강사가 서로 달랐고 진도는 같이 나갔으나 뭐랄까 둘이 진도를 같이 공유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 상황속에서도 정말 순진하게 그런 공부들이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 엄청난 목표를 향해 지금 이 단계의 공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원래는 일정 금액을 교육생들에게 현금으로 지원도 해 주어야 했지만 그것은 어디로 간건지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그 사짜 같은 강사 주머니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냥 사기당한 건데도 나는 왜인지 모르게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저 내가 내 인생을 위해 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에 따라 내가 행동한다는게 정말 행복해서 그랬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교육을 듣는 방식이 뭔가 의미없는 것을 받아 적는 지루한 인문학 수업이 아닌 그냥 따라 치면 내 앞에 모니터에 사이트가 뜨는 그 실습형 방식의 수업을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럼에도 수업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강의를 들어야 했고 졸업 학점을 맞춰야 했기에 정신도 없었지만 어떤 강사는 강사 자격도 없는 그냥 일반 개발자인건 같은데 그냥 용돈 벌러 나온 강사 같은 느낌이었다. 학기 중에 수업을 들으며 이건 정말 내가 생각한 빅데이터와는 전혀 다른 그냥 일반적인 웹 개발자 양성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1학기가 모두 끝난 마지막 주중 수업에서였다. 수업을 마지막까지 따라오는 학생은 처음 10명에서 7명이 남게 되었고 그래도 끝까지 따라와준 학생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낀 강사가 이 수업은 빅데이터와는 상관없는 일반 수업이라고 진실을 고백했다. 사실 어느정도 눈치를 채고는 있었지만 전혀 관련 과정이 없을 줄을 정말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어찌되도 상관 없다는 마음이었다. 이미 나는 그 과정을 통해서 프로그램을 꼭 해야 겠다는 생각을 자리잡게 되었다. 어차피 남은 과정을 다 들어야 학점을 받을 수 있으니 나로서는 아쉬울게 없는 상태였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되었는가. 세상의 흐름의 옷소매 끝자락을 붙잡고 싶었다. 국문학과를 공부하고 군시절을 보낸 5년의 세월 동안 세상은 정말 기술 적으로 많은 것이 변해 갔다. 아이폰으로 부터 유튜브, 클라우드, AI. 그래 AI. 인문계라인은 타왔던 나에게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었다. 인공지능에 관심은 없었지만 잡지식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옛날 조치훈 9단이 AI와 관련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만일 세상에 AI가 바둑으로 인간을 이기는 시대가 온다면 그 세상의 인류는 이미 망한거나 다름없다고 했었다. 그 알파고의 대국은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종말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알던 세상은 곧 흘러가 사라지고 없을 진대 내가 있을 곳이 어디에 있을지 뻔했다. 나 역시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겠구나. 적어도 프로그램 정도는 계속 알고 있어야 시대의 흐름에 끝자락을 붙잡고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밥벌어 먹고 있는 기술과 상관없는 클라우드에 목을 매고 있는 거다. 적어도 AI를 내가 직접 컨트롤 할 수 없다면 AI를 판을 깔아주는 직업이라도 가져야 겠다는 생각. 그리고 세상에 흐름이 10발자국 앞에 갔다면 그 1발자국은 따라가 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었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남들을 앞서지는 못해도 남들이 가는 길에는 따라가기 위해서는 그때는 프로그램을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을 지금은 클라우드를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이어서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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